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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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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다시 읽은 <난쏘공>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의 을 처음 읽은 것은 풋풋한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었다. 혼자만의 귀향(불가피한 이유에서였지만)은 예상했던 것만큼 적적하였고, 늘 토끼 같은 자식들 울음소리에 지쳐 곯아 떨어지던 나는 그것을 대신할 무엇인가를 찾느라 이유 없이 분주한 밤을 보냈다. 그날 밤의 분주함은 어림잡아 내 나이는 족히 되어 보이는 책장 위에 뽀얀 먼지처럼 숨죽여 앉아 있는 지난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 지난 추억들 속에서, 나는 15년만에 다시 조세희의 을 펼쳐 들었다. 참 많이도 바랜 책의 표지가 서른 중반이 되어버린 대학 동창의 얼굴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15년 전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어느 커피숍 한 구석에 웅크려 서툰 담배 피워가며 토론이라고할 것도 없는 '토론'을 벌였었다. 조세희의 을..
김훈, <개>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우리는 흔히 제삼자의 시선으로 어떠한 대상을 바라볼 때, 그러한 시선을 두고 '객관'이라고 말한다. '객 관'이라는 말의 이해에 있어서 우리가 흔히 범하고 있는 오류 중의 하나는 '객관'='진실'이라는 등식을 섣불리 떠올린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제삼자의 '객관적인' 시각은 제삼자의 주관이 반영된 것일 뿐, 그것이 '진실'을 담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바라보는 제삼자의 시선을 우리의 그것보다 보다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들에게 내재하고 있는 수많은 욕망이 우리 스스로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의 틀에서 생존을 위해 아웅다웅 다투며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은 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우유대장이었던 어린 시절. 유통 기한이 지난 줄도 모르고 상한 우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절대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그 맛에 나는 심한 구토를 했었고, 한 동안 달고 있었던 배앓이로 우리 집을 매일 드나들 수밖에 없었던 우유 배달 아주머니는 애꿎게 발소리를 죽여야만 했었다. 그 후로 나는 내 뱃속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로 하여금 내 눈과 내 코를 먼저 거쳐가도록 하였고, 비행기에 오르는 승객들처럼 이 두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한 것들에게만 내 뱃속으로 들어올 자격을 주었다. 우리들의 삶과 사랑도 저마다의 유통 기한을 족쇄처럼 차고 있다. 삶의 유통 기한은 죽음이 오기 전까지이며, 사랑의 유통 기한은 권태나 이별이 습격하기 전까지의 황홀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상한 우유처럼 삶도 사랑도 '유통 기한이..
마시멜로 이야기 작년에 이어 올해 초까지 여전히 국내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 셀러로 올라있는 책. 이른바 성공학 개론 같은 내용을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인 취향 탓이기도 하겠으나, 책을 읽고 난 뒤 나에게 남은 것들 중 제일 덩치가 큰 녀석은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을까?'라는 의구심. 왜일까? 왜일까? 왜? 길게 잡아도 2시간이면 족할 짧은 글 속에서 작자가 보여주는 통찰의 깊이는 '성공'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라는 두 단어로 간략하게 정리가 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 책을 두고 누구나 갈망하는 성공에 대한 너무나도 쉽고 단순한 접근법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런 찬사에 순순히 동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다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 정도라는 느낌을 떨쳐 버리기 ..
파울로 코엘료의 '11분' - 性을 통해 바라본 인간 문명의 폭력성 플라톤에 따르면, 천지창조 초기에는 남녀가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고 해요. 하나의 몸, 하나의 목, 그리고 각자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두 개의 얼굴이 있는 남녀 양성의 존재들만 있었죠. 마치 두 피조물의 등이 붙어 잇는 것처럼 성기가 둘이고 팔 다리는 네 개씩이었다오. 그런데 질투심 많은 신들이 글 피조물은 팔이 네 개라 일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얼굴이 두 개라 번갈아 잠을 잘 수 있는 바람에 몰래 공격할 수 없고, 다리가 넷이라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오래 서 있거나 먼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소.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그 피조물이 양성(兩性)이어서,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소. 올림포스 신전의 최고 주인 제우스는 '나에게 저들의 힘을 빼앗을 방도가 ..
황석영의 손님 - 화해와 상생을 위한 지노귀굿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오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라고 할 수 있다. 전통시대의 계급적 유산이 남도에 비해 희박했던 북선 지방은 이 두 가지 관념을 '개화'로 열렬하게 받아들였던 셈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뿌리를 가진 두 개의 가지였다. 천연두를 서병(西病)으로 파악하고 이를 막아내고자 했던 중세의 조선 민중들이 '마마' 또는 '손님'이라 부르면서 '손님굿'이라는 무속의 한 형식을 만들어낸 것에 착안해서 나는 이들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손님'으로 규정했다. 한국전쟁 50주년이던 작년 6월부터 '손님'의 집필이 시작되었다. 또한 작년은 남북정상회담이며 이산가족 상봉 등의 사건으로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되기도 했다. 서구에서 냉..
파울로 코엘료의 < 연금술사 > 연금술사(鍊金術師) : 연금술에 관한 기술을 가진 사람. ≒연금사. 연금술(鍊金術) :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아라비아를 거쳐 중세 유럽에 전해진 원시적 화학 기술. 구리, 납, 주석 따위의 비금속(卑金屬)으로 금, 은 따위의 귀금속을 제조하고, 나아가서는 늙지 않는 영약(靈藥)을 만들려고 한 화학 기술로, 고대 이집트의 야금술(冶金術)과 그리스 철학의 원소 사상이 결합되어 생겼다. 근대 화학이 성립하기 이전까지 천 년 이상 계속되었다. 두 번의 꿈에서 똑같이 보았던 보물을 찾아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찾아 나선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에게 사막의 연금술사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네. 이 땅 위의 모든 이들은 늘 세상의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다만 대개는 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