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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07년에 다시 읽은 <난쏘공>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처음 읽은 것은 풋풋한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었다.

혼자만의 귀향(불가피한 이유에서였지만)은 예상했던 것만큼 적적하였고, 늘 토끼 같은 자식들 울음소리에 지쳐 곯아 떨어지던  나는 그것을 대신할 무엇인가를 찾느라 이유 없이 분주한 밤을 보냈다.

그날 밤의 분주함은 어림잡아 내 나이는 족히 되어 보이는 책장 위에 뽀얀 먼지처럼 숨죽여 앉아 있는 지난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 지난 추억들 속에서, 나는 15년만에 다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펼쳐 들었다.

 참 많이도 바랜 책의 표지가 서른 중반이 되어버린 대학 동창의 얼굴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15년 전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어느 커피숍 한 구석에 웅크려 서툰 담배 피워가며 토론이라고할 것도 없는 '토론'을 벌였었다.

조세희의 <난쏘공>을 다시 읽고난 지금 나는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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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스럽기 그지없다. 돌이켜 보니, 15년 전에도 나는 난장이 가족의 이야기를 곤혹스러워 했었다.

바랜 책표지에 윤기를 내며 스며있는 지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책도 나도 세월의 빛깔로 한 겹 덧칠을 한 듯하다. 다만 조세희의 <난쏘공>은 많은 이들의 건강한 고민의 손때로 그 아름다운 빛깔을 하루하루 더해 가는 데 반해, 나는 15년 전 '나'가 가지고 있었던 색상과 채도를 '생활'이라는 캔버스에 내어주고 점점 더 칙칙한 무채색으로 변해만 가는 것이다. 15년 전 그 때처럼, 나는 지금도 난장이 가족들에게 뭔가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나인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달나라를 꿈꾸다 굴뚝 속으로 떨어져 죽었던 난장이 '김불이'氏,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은강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으려 했지만, 결국 살인과 사형 선고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장남 '영수',
아버지 '난장이'의 말대로 그들의 조상들이 흘린 500년 동안의 땀방울을 모아 지어낸 한 채의 집을 지키려다 더러운 '돈(富)'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던 팬지꽃을 닮은 영희.

1970년대 한국 사회는 그들을 '난장이 가족'이라 불렀으나,
2007년 우리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난장이'는 없어진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난장이'인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또다른 '난장이'들이 여전히 독일의 릴리푸트읍을 꿈꾸고 있는 것인가?

더이상 그들을 '난장이'로 부르도록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정도의 의식을 갖추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난장이'로 불리우는 이들이 존재하며, 1970년에는 없었던 새로운 '난장이'들이 달나를 꿈꾸는 사회, 그것이 바로 2007년의 한국사회의 모습은 아닌가?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 도시 노동자들의 삶,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부동산 자본의 개발 논리에 떠밀려 길가로 내몰리는 철거민들, 미군 기지 이전으로 삶의 모든 것들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대추리 사람들, 한미 FTA 협정 체결을 힘없는 몸뚱이 하나로 막아내고자 싸우는 가난한 농부들, 10년 월급을 꼬박 저축해도 새장만한 아파트 한 채 갖기 어려운 봉급쟁이들, 이 모두가 2007년 한국 사회의 난장이들은 아닐까?

나는 내가 '지섭'이 될 수도, '윤호'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절대 '난장이'가 되어서는 안 되며, 먼발치에서 그들을 연민하되 그들과 살을 부대끼는 이웃으로 나를 살아가게 해서는 안된다고 다그치고 있다.

나는 이런 나의 위선과 한계를 환멸한다. 동시에 나는 그런 환멸이 지금의 '생활'에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나를 위로한다. 나는 이렇게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15년 전 그 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난쏘공>에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이다.



덧붙이기: 올해 조세희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드라마와 연극으로 시청자와 관객을 찾을 예정입니다. 관련 기사를 모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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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TV문학관에서 방영 예정인 <난쏘공>



소설 '난쏘공' 드라마로 쏜다.
    KBS1 ‘HD TV 문학관’서 내달 3일 방영…도시빈민의 좌절과 애환 그려



'난쏘공'이 27년만에 돌아온 까닭은?...'집 값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