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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자상한 아빠가 되고 싶다면?



어린 학생들에게 방학은 늘 손꼽아 기다리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방학을 맞이하고는 시간을 흐지부지 보내기 십상이죠.

설상가상 개학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 다가오면 급기야 온 가족이 동원되어 '우리 아이 방학숙제 완성하기' 프로젝트에 돌입하기도 합니다.
숙제를 도와주는  엄마 아빠는 겉으로는 아이를 나무라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옛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속에 한 가득 미소를 담고 가위질을 하게 마련입니다.

제 아이는 올해 여섯 살 난 유치원생입니다.
"아니?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두고서 방학 숙제 운운하나요?"

이렇게 핀잔을 주실 분들도 더러 계시리라 여겨집니다.
요즘은 유치원도 방학 숙제가 있더군요. 초등학교처럼 방학 기간이 길지는 않아 숙제량이 많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오늘 아빠는 아이와 함께 방학 숙제를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한 번도 '스케치북'을 접해 보지 못한 아빠로서는 다소 부담스럽기도 한 일입니다. 하지만 조르는 아이 앞에서 아빠의 체면을 구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용기를 내 봅니다.
자~ 준비물은 스케치북, 크레파스, 칼, 이 세가지면 됩니다.

오늘 우리 아이와 함께 만들 작품은 '진짜 같은 우리 동네 만들기'입니다.

제 또래의 아버지들은 아마 기억을 하실 겁니다.
동네 문방구에서 팔던 50원짜리 축구게임 기억나시나요?
종이로 만들어진 축구장과 축구선수, 그리고 책받침 재질로 만들어진 납작한 축구공을 손톱이나 연필 끝으로 튕기면서 상대방의 골문에 골을 넣는 게임이었지요.

제 아이와 함께 만든 작품(?)이 바로 그 게임과 비슷한 거랍니다.
스케치북에 우리 동네를 평면으로 그린 다음, 집이나 나무 등을 모양대로 칼로 잘라 일으켜 세우면 3차원 작품으로 탈바꿈하는 거지요.

솔직히 고백하면 아래 사진에 나와있는 것처럼 유아용 미술책에 나와 있는 방법대로 따라한 것입니다.^^;
자, 지금부터 저희 부자의 미술 솜씨를 감상하시겠습니다.


하나태윤이와 함께 스케치북에 우리 동네를 크레파스로 그렸습니다.


. 스케치북에 완성된 2차원 동네의 모습입니다.

원래 그림책에는 미끄럼틀도 있었는데 과감히 생략을 했습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사실 그림을 그릴 때 아이가 스스로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이끌었어야 했는데 아빠가 더 신이 나서 혼자 다 그려 버린 것이 아쉽습니다.


. 이제 칼을 이용, 스케치북에 그려진 모양대로 자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 작업 하실 때 주의하실 점 있습니다. 칼은 위험하니 당연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머릿속으로 딴 생각을 하시면 안된다는 겁니다. 잠깐 딴 생각을 하시는 동안 아빠는 스케치북에서 그림을 뻥~ 구멍이 뚫리게 통째로 오려내게 되고, 아이는 아마 원망스런 눈초리로 아빠를 바라볼지도 모릅니다. 위 그림에 있는 사람이나 집, 나무 등을 일으켜 세울 거니까 아래 부분은 절대 자르시면 안되겠죠?



. 여섯 살 난 아이에게 디카를 건네주고는 "태윤아, 아빠 미술하는 거 찍어줘" 라고 말합니다.

위에 못 생긴 아빠 손 사진 두 장을 찍은 촬영기사는 우리 여섯 살 난 아들, 태윤이입니다.

아빠가 카메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아들 녀석도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잘 만집니다. 아이가 칼을 만지는 것은 위험하니 안되고, 어떻게든 아빠와 함께 하는 작업에 동참을 시키고 싶어 촬영기사 역할을 주었습니다. 아이는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태윤이가 만들어 낸 결과물도 썩 마음에 듭니다.

어떻습니까? 이정도면 수준급의 촬영이죠?^^



다섯. 조심조심 작업을 해서 오른쪽 동네에 사는 예쁜 오누이와 집, 그리고 나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여섯. 이번엔 왼쪽 동네에 있는 집과 나무를 일으켜 세워 줍니다.


 

 일곱짠~! 아빠와 태윤이가 함께 만든 첫번째 작품이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마치며. 우리 태윤이가 세상에 태어난지 6년이 되어 갑니다. 그동안 저는 나름대로 "난 자상한 아빠다."라고 생각을 해왔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아이와 함께 해 준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이와 함께 해 본 이 미술 숙제가 아빠와 태윤이의 생애 첫 합작품인 셈입니다.

오늘 저는 아이의 방학 숙제를 하면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유치원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숙제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숙제 더 많이 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