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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내비게이션으로 바라본 2008 대한민국

요즘 많은 운전자들이 차량에 내비게이션을 장착해 운행하고 있습니다. 저도 물론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산 뒤로는 모르는 길을 갈 때마다 길을 잘못 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떨쳐버릴 수 있어 참 좋더군요. 사실 그 전에는 신호 대기때마다 지도 보아가며 운전하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거든요. 네비게이션의 등장으로 길치인 저에게도 좀더 편안한 드라이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제가 내비게이션을 산 것은 3년 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내비게이션은 길안내에 음악 감상, 동영상 재생 정도의 기능을 지니고 있었죠. 하지만 요즘 출시되는 내비게이션을 보면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기능들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위에 말씀 드린 기능은 기본이고, DMB 방송, 노래방, 실시간 교통정보 제공, 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능들을 가진 내비게이션이 우리 주변에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비게이션의 변화를 두고 많은 매체들이 '내비게이션의 진화'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화일까요? 내비게이션은 진화했으나, 내비게이션을 진화시킨 우리는 한 발짝 뒷걸음질친 건 아닐까요?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운전 중 DMB 시청의 위험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MBC 뉴스 캡처>

내비게이션의 눈부신 발전에는 지상파 DMB 방송이 큰 몫을 하였습니다. 역으로 지상파 DMB 방송의 보급에 내비게이션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요즘 출시되는 내비게이션치고 DMB 기능을 구비하지 않은 제품이 거의 없으니, 이 둘의 공생 관계는 정말 절묘하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운전 중 DMB 시청이 상당히 위험하다는 이야기, 뉴스를 통해서 다들 들어보셨을 것으로 압니다. 하도 언론에서 많이 언급했던 이야기라 거짓말 조금 보태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 한 방송사의 실험 결과, 운전 중 DMB를 시청하는 운전자의 경우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신 운전자보다 전방 주시율 등에서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고, 그만큼 사고 위험도 더 컸다고 합니다.

관련 법규 제정은 왜 자꾸만 늦춰지는가?

운전 중 DMB 시청이 음주 운전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이야기인데, 정작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그 어디에서도 운전 중 DMB 시청 단속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지난 2005년 경찰은 DMB 시청도 휴대전화 사용으로 보고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나, 2007년 9월까지 단 한 건의 단속 실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운전 중 DMB 시청 제한에 대한 관련 법규정이 없어 경찰관들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군요.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5년 한 국회의원의 발의한 ‘주행 중 DMB 시청’을 금지하는 법률안은 작년 4월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 상정됐으나 심의가 보류돼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이를 두고 우리가 신기술로 야심차게 추진했던 DMB 방송의 퇴출 위기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요? 만에 하나라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해서 다른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면 당장 그 생각을 고쳐야 할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의 기술적 진화, 뒷걸음질 치는 대한민국

자기 정당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법률이라도 심심치 않게 날치기 통과를 하는 우리 국회.
일반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2년 동안 한 발짝의 진전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의 기술적 진화, 그 이면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인들, 돈이 되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기업들의 천박한 상업주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안전 불감증이 함께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내비게이션으로 바라본 2008년 대한민국, 과연 제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면 유턴을 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차의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국민의 안전과 행복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