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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폭소클럽2의 '응급시사'에 바란다.

허경영217대 대선이 끝난 지 보름이 되어 간다.
우연찮게 한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에 허경영 후보가 출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독특한 공약과 다소 황당한 주장으로 선거 기간 내내 관심(?)을 끌었던 허경영 후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인가 궁금해진다.

대선에서 패배한 메이저 정당의 정치인들의 기사조차 제대로 찾아보기 힘든 요즘, 허경영 후보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주요 언론 매체들의 단골 기사거리가 되고 있고, 그의 미니홈피에 달린 댓글 하나 하나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오늘 그는 전국의 수많은 시청자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큐가 430이라고 말했고, 눈빛만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으며, 잠실운동장과 똑같은 크기의 UFO를 압구정동에서 봤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 UFO는 0.1초만에 은하계까지 이동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자기만이 볼 수 있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는 한국레스토랑의 총주방장(대통령을 의미함)이 되면 몽골과 먼저 통일을 하고, 페레스트로이카에 의해 옛 소련이 여러 국가로 분열되었듯이 지금의 중국도 똑같은 과정을 밟게 될 것이고, 그렇게 분열된 중국의 여러 국가들을 통일하고, 일본까지 통일한 뒤 마지막으로 북한과 통일을 하겠다고 한다. 이 말에 냉소의 웃음을 짓은 방청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개그맨 김학도의 질문에 "아마도 중국 사람들이겠지"라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아이큐 100인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응급시사'를 보고 난 뒤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났을 때의 유쾌함 보다는 멍~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다가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고 뒷통수를 한 대 더 맞은 느낌마저 들었다.

...'폭소클럽2'의 권용택 PD는 이날 녹화에 대해 "허경영 후보가 생각보다 굉장히 코미디에 대한 감이 좋아서 녹화가 재미있었고 허 후보도 만족스러워했다"면서 "자칫 코미디 무대에서 허 후보가 희화화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위트 있게 대답을 해서 녹화 분위기가 좋았다"고 전했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876015

오늘 방송된 '응급시사'에서 허경영 후보가 한 말은 우리 국민들 뿐만 아니라, 국외적으로 볼 때에도 문제가 될 만한 발언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몽골을 통일하고, 쪼개진 중국과 통일하고, 게다가 일본, 북한까지?
코미디 프로그램이었지만, 그가 우리 나라의 17대 대선 후보였다는 점에서 이런 발언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발언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허경영 신드롬(?)의 원인을 국민들이 기존 정치권에 식상하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기존 정치인들의 구태 의연한 모습에 식상한 국민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그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론이 신드롬이라는 용어 자체를 쓰는 것부터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가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신드롬이 거세지면 거세질 수록 국민의 한 사람인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응급시사'를 보면서 아이큐 100밖에 안 되는 모자란 인간으로 초라하게 전락하고 말았으며, 그가 중국 사람이라고 면박을 주었던 두 여자 관객과 똑같이 졸지에 중국 사람이 되고 말았다. 허경영 후보가 다음 대선에서도 출마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 나 같은 보통(그가 보기에는 아이큐 100밖에 안 되는) 사람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아량을 베푸는 쪽이 득표에는 훨씬 나을 듯하다.

씁쓸하다. 총 유권자 중 0.4%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연일 보도하며, 그를 스타로 만든 데에는 언론들의 역할도 컸다. 폭소클럽 담당 PD는 '자칫 코미디 무대에서 허 후보가 희화하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했는데'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다. 그의 말과는 달리 머리 나쁜 내 눈에 비친 그는 코미디 프로에서 희화화된 인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동시에 그 프로를 지켜보고 있는 나마저도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으니 말이다.

시사 풍자 코너의 성격으로 출발한 '응급시사'.
풍자(諷刺)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몇몇 정치인들의 성대 모사를 잘한다는 것만으로 시사 풍자가 될 것인지 과연 궁금하다.  지금의 '응급시사'는 인물들의 희화화에만 관심을 쏟고 있지, 우리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비판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다.

모쪼록 '응급시사'가 시청자들로부터 풍(風) 맞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