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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둘째를 낳고도 내가 울게 된 사연


각한 저출산 문제에 대한 사회 각계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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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 둘째를 낳고 새로운 생명의 아빠가 된 기쁨은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그리고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 사회에 어쨌든 조그마한 기여라도 한 것 같아 뿌듯해 했던 어리석은 마음도 그 곁에 같이 접어두고 글을 쓰려 합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 사회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 산하 기구나 각 지자체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출산 장려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이 둘 낳은 것이 무슨 큰 업적이나 된다고 생각해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에 역행하는 의료 서비스와 의료 보험 체계에 대해 제가 이번에 느꼈던 씁쓸한 속내를 감추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똑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아 보이고, 앞으로도 하실 분들이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택한 적이 없는데 선택진료비라니?

평소 병원의 '선택진료비'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습니다. '환자가 치료 받기를 원하는 의사를 선택해서 진료를 받는 대신, 얼마간의 비용을 더 부담하는 것'이라는 것이 선택진료제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전부였습니다.

영수증을 사진으로 첨부하였습니다. 둘째 아이의 출산에서 퇴원까지 3일을 병원에서 지냈습니다. 아이의 병원비까지 모두 72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더군요. 그 중 위의 영수증은 제 아내 병원비 영수증입니다. 선택진료를 하지 않았다면 36,539원만 들었을 병원비가 523,307원이나 들었습니다. (친절하게도 병원에서 원 단위 이하 7원은 깎아주더군요.)

실력 있고 권위 있는 의사 선생님의 치료를 받아 출산에 상당히 위험이 있었던 제 아이가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 의사 선생님을 두고 50만원의 돈을 아까워 할 아빠는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저는 지금 제가 지출한 저 50만원의 비용이 무엇때문에 발생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분만과 치료 도중에 지정의로 선택되어 있던 그 의사 선생님이 한 일은 30초 정도 얼굴을 내밀고, "진통 어때요?"라고 물은 것이 다였습니다. 분만을 맡은 것은 지정의가 아니였고, 그 밑에 있는 인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젊은 여자 의사 선생님이었지요. 30초에 50만원? 꽤 괜찮은 장사입니다.

더욱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병원측이 치료를 받기 전 환자나 보호자에게 선택진료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택진료를 받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는지, 비용에서는 대략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등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입원 전 무슨 서약서인가를 쓰긴 했는데, 만약 병원측에서 설명을 했다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아이를 낳을 것 같은 산모를 두고 그 서약서의 항목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어볼 정신을 가진 아빠가 있을까요? 서약서에 선택진료제에 대한 항목이 명시되어 있건 없건 담당직원이 구두로 분명히 정보를 제공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택진료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은 것은 우습게도 입원비 영수증 뒷면의 안내문에서였습니다. 이미 선택진료를 받은 것으로 다 처리가 되었고, 그 비용을 지불하는 영수증 뒤에 깨알같은 글씨로 안내를 해놓다니, 눈 가리고 아웅하기라고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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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진료제에 대한 안내를 담고 있는 입원비 영수증 뒷면

돌이켜 생각해 보니 병원 원무과에서 이 한 마디 했던 기억이 납니다.
"OOO 선생님 환자분이시죠?"  
평소 진료를 받아오던 의사이기에 "네"라고 대답한 것이 전부였는데 그것이 선택진료에 대한 동의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병원측에서는 분만과 입원 생활 하는 동안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유인물로 설명을 하고 설명을 들었다는 서명까지 받더군요. 그런데, 왜 병원 수입에 직결되는 선택진료제에 대한 사전 설명은 전혀 없었던 걸까요? 결국 지금 우리의 병원들은 수입 올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고객들을 위한 진정한 서비스를 실현하는 것에 너무나 소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실은 2인실로 잡고 본다?

또 한 가지 황당한 사례입니다. 진통실로 들어가기 전 원무과에서 접수를 하고 입원 등록을 하였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제대로 요청하지 않은 것도 실수이겠지만, 원무과 직원은 입실을 원하는 병실의 종류에 대해 전혀 질문하지 않고,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첫째를 낳았을 때 멋모르고 2인실 병실에서 지내다가 입원비에 화들짝 놀랐던 경험이 있어서, 아내와 저는 이번에는 6인실 병실을 쓰기로 했었죠.
아내와 함께 진통실에 있으면서 궁금해서 간호사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병실은 6인실로 하고 싶은데 괜찮나요?"
"6인실이요? 네, 바꿔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의문이 생깁니다. "바꿔 줘? 뭘?"
그렇습니다. 병원에서는 임의대로 우리 부부에게 2인실을 배정해 놓았던 것이죠.
그 때 간호사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부부는 훨씬 더 많은 병원비를 지출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첫째 아이를 2002년에 낳았으니 그 때도 선택진료비가 청구되었을 텐데, 그 때는 거기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나 봅니다.


무 비싼 검사비

표현이 조금씩 과격해 지고 있습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제 둘째 아이 검사하는 데 든 비용만 본인부담금 199,641원입니다. 의료 보험으로 의료보험공단에서 지급하는 액수는 96,966원이더군요.
아이 많이 낳으라고 국민들에게 강조하면서 조그만 아이 하나 검사하는 데 들어가는 본인부담액이 이렇게 커서야 누가 아이 낳고 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치료 받겠습니까?
임신하고 산모가 병원에 다니면서 초음파 검사다 기형아 검사다 받은 것만 해도 몇 번인지 아십니까?

작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 월급에서 강제로(?) 떼어 간 의료보험비만 해도 1,034,820원입니다. 아내도 직장에 있고 저와 비슷한 연봉이니 부부 합치면 200만원이 조금 넘습니다. 그 중에 이번에 100만원 정도를 지원받은 셈이군요. 하지만, 병원 한 번 안 가보는 건강한 사람들, 애 낳을 때만이라도 조금 편하게 낳을 수 있도록 더욱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만 써야 하겠습니다.
경사스러운 우리 둘째 아이 출산을 두고 너무 씁쓸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그리고, 배 아픈 아내 옆에 두고 병원비 때문에 이런 글 쓰고 있는 제 자신이 스스로도 쩨쩨해 보여 그만 접겠습니다.

이쯤하면 먹고 살기도 빡빡한 대한민국 남편들, 정말 울고 싶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출산의 기쁨을 망치지 않으려면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게 될 예비 엄마아빠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병원 가셔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