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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五年之小計', 잘못된 교육제도 1 - 수시 전형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꼈던 우리 교육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교육을 흔히 백년지대계라 이른다.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함을 뜻하는 말이다.

현재 우리 나라 교육의 핵심은 입시제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면 5년이 멀다하고 바뀌는 입시제도 때문에 정작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에는 소홀해지고 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 또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올해 입시는 내년부터 크게 달라지는 제도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도 치열한 눈치 작전과 하향 지원으로 아이들은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우리 교육의 수많은 문제점 중의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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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로 떼돈을 벌고 있는 이들>

먼저 '수시 입학' 제도에 대해 쓴소리를 해보고 싶다.
현행 수시 입학 제도는 '교실을 황폐하게 만들고, 교사들을 잡무에 시달리게 만들지만, 대학들의 배를 불리고,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 부담을 덜어주는' 양날의 칼에 다름아니다.

애초 교육부에서 말한 수시 입학 전형의 취지는 학업 측면 이외의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특기의 계발을 장려하고, 그러한 능력과 특기의 계발로도 대학을 갈 수 있게 한다는 데 있었다. 시쳇말로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에 동의하는 나로서는 수시 입학 전형의 원취지에는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수시 입학 제도는 원래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내신 성적과 논술, 심층 면접으로 학생들을 선발?  대학별로 천차만별인 수시 입학 전형. 하지만 많은 대학들은 학생들을 뽑을 때 내신성적과 심층 면접, 논술 등의 요소를 사정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특기를 계발하고자 하는 원래 취지와는 달리 수시 입학 제도는 여전히 성적으로 학생을 뽑는 제도인 셈이다. 봉사활동전형, 특기자전형, 대학별 독자전형(예를 들면,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한 전형) 등 다양한 특별 전형들을 대학에서 마련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전형을 통해 선발하는 인원은 일반학생전형으로 선발하는 인원에 비해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어떤 전형이든지 모두 성적을 중요한 잣대로 삼아 학생들을 선발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그럴 바에에 정시에서만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학교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내신 부풀리기?' - 잘못된 일? NO! 교사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어쩔수없는 방법  얼마 전 '고교 내신 성적 부풀리기'가  세간의 관심이 된 적이 있다. 모사립대학들의 수시 입학 전형의 부정이 불똥이 되어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화마(火魔)를 입은 사건이다. 그 당시 교육부와 언론이 학교 현장에 대해 취한 태도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내신성적 부풀리기'가 도마위에 오르자 일선 학교에 '수'를 받는 학생의 비율을 15% 이내로 줄일 것을 지시하고, 이를 위반하는 학교에는 재정적 지원 등을 감축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일선 학교에 보내왔다.  
현재 1, 2학년들은 내신 자체가 상대 평가로 바뀌었지만, 현재 3학년 아이들은 절대평가로 내신 성적의 평어(수우미양가)가 대학 입학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학년이다.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내면 내 새끼들이 대학을 못가게 되는데 어떤 선생님이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낼 것인가? 교육의 근본을 생각하지 못한 교사들의 우매한 처사라고 쉽게 비난해서는 안된다. 나의 동료 교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교육청으로부터 주의나 경고 조치를 받더라도, 아이들 점수 잘 줘서 대학 보내고 싶다."라고...
내신 부풀리기 문제가 대두된 것도 수시 입학 전형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 책상 머리에 앉아 잘못된 제도를 만들어 성급하게 시행해 놓고, 모든 교사들을 한심하고 어리석은 인간들로 만드는 것이 우리 교육부의 정책이고, '五年之小計'인 우리 교육의 현주소이다.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버는 대학들과 수시 전형에 기생하는 사교육의 독버섯들  7만원에 가까운 전형료 수입을 챙기는 대학들, 수시 입학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버는 원서접수대행사이트, 논술, 면접 준비 등으로 특수를 타고 있는 사설 학원들... 과연 이들은 누구의 돈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는 것인가? 우리반 어떤 녀석은 올해 원서 접수하는 데만 100여만원에 가까운 돈을 써야만 했다.
국민의 당연한 권리, 교육.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게 아닌가?

수시 합격생들에 대한 고려와 계획은 전무한 실정  1학기 수시에 합격한 학생들은 어떻게 남은 고 3 시간을 보내야 할까?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정상적으로 수업을 들으며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 상당히 무리가 따른다. 수시에 합격하지 못한 아이들이 가지는 심리적인 위화감도 문제이고, 합격한 학생에게도 교실 수업은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다. 교육청에서 몇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기식의 조치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시 합격생이 많은 반은 갈수록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 되고 만다.  

접으며 돈 많은 집 아이들은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쓰는 데 몇 백만원의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수시 전형의 지원 자격을 충족하기 위해 어떤 부모들은 몇 백만원씩 투자(?)하여 상을 만들어 아이의 품에 안겨준다는 것또한 얼마전 기사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형식적으로 시간 때우기에만 급급한 아이들,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를 고쳐주고, 추천서 쓰느라 수업을 뒷전으로 내팽개친 선생님.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2008학년도 입학 전형부터 1학기 수시를 대폭 축소한다는 교육부와 대학의 발표는 이러한 문제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지금도 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피같은 돈을 빨아먹으며 희희낙낙하고 있을 대학들과 사교육 시장의 수많은 돈벌레들을 상상하면 치가 떨린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리고 언론이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보지 못하고 모든 잘못의 원인을 쉽게 학교 현장으로, 일선 교사의 몫으로 돌리고 만다는 데에 있다.

사건, 사고 뉴스에서 학교와 관련된 기사를 최근 쉽게 접하게 된다. 교실붕괴, 학교폭력, 교사부정... 몇몇 개인에 대한 평가가 전체 구성원에 대한 판단으로 성급히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의 본질적 원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일 터이다.